[중대신문] 문화제국주의
제국의 습격 문화제국주의
2006년 03월 24일 (금) 16:24:54최화진 편집위원 drum57@nate.com

문화제국주의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거대 기업들이 문화생산양식을 통제함으로써 세계경제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문화기획에서는 ‘문화제국주의’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두 두 번의 기획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싣는 순서 
- 문화제국주의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 현대사회 문화제국주의 모습


이남표 / 홍익대 강사


‘문화제국주의’란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제국주의’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는 강대국이 자신의 정칟경제적 지배력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로 확대시키려는 침략주의를 말한다.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 역사 속에서 제국주의는 실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말 영국 신문 <데일리뉴스>가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전체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부터였다.
군사적 침략을 통한 영토와 지배력 확장을 일반적으로 뜻했던 제국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더욱 엄밀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1916년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란 저서를 통해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필연적인 정치경제적 구조로 제국주의를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의 본질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자기팽창에서 찾을 수 있다. 시장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낳고, 승자는 자연스럽게 독점을 통해 보다 높은 이윤을 확보한다. 이 독점자본은 지속적인 초과이윤 확보와 스스로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국경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따라서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 그리고 소비재 상품의 안정적인 시장을 마련하기 위한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안으로 군사적 침략을 통한 식민지 지배와 이를 둘러싼 열강들 사이의 전쟁이 이어지게 된다.

맥도날드의 침략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이전 식민지 국가들의 대다수가 정치적 독립을 달성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정치적 독립이 불완전한 것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군사적 침략을 통한 직접적인 정칟경제적 지배는 여의치 않게 되었다. 독점자본은 새로운 계기와 출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일제가 우리 민족의 거센 독립운동에 위협을 느껴 총칼을 앞세운 무단통치를 부드러운 문화통치로 바꾼 것과도 같다. 문화란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자 그것들이 사회의 각 영역을 가로지르며 서로 경쟁하는 장’이다. 삶의 방식들을 지배할 수 있다면, 굳이 군사적 위협과 정치적 억압을 휘두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경제적·이데올로기적 지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독점자본에서 찾아냈다. 맥도날드 햄버거, 나이키 운동화, 스타벅스 커피, 메이저리그 야구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들이 새로운 제국주의의 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제국 군대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6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세계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 안에서는 언론학자 쉴러가 1969년 <매스커뮤니케이션과 아메리칸 제국>이란 저서를 통해서 문화제국주의의 실상을 고발했다. 벨기에 사회학자 마틀라르와 칠레의 저술가 도르프만은 1975년 라틴아메리카의 정칟문화적 삶에 대한 미국의 교묘하고 부당한 개입과 조작을 비판하는 연구인 <어떻게 도날드 덕을 읽을 것인가>를 출간했다. 이들의 연구는 50년대와 60년대에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종속이론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제국주의 이론이 미국의 다국적 기업을 통한 해외시장의 확대와 그로 인한 제3세계의 저발전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반면, 문화제국주의 이론은 경제적 착취의 배후에 놓인 문화적·이데올로기적 권력의 효과에도 주목한다.
문화제국주의의 모습을 턴스톨은 “세계 도처에서 지역문화가 미국의 경박한 상품들과 매스미디어 생산물들의 무차별적인 대량판매에 의해 파괴되고 소멸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해와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톰린슨은 문화제국주의를 말하는 이들이 모두 똑같은 의미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문화제국주의는 네 가지 방식으로 구성된다.

문화제국주의를 바라보는 네가지 방식

첫째, 문화제국주의는 미디어제국주의이다. 미디어제국주의는 세계적 차원에서 미디어 소유와 운영에 관련된 문제, 다시 말해 미디어 생산물의 생산과 분배 방식 및 그에 따른 미디어복합기업의 세계 시장 지배를 문제 삼는다. 아울러, 미디어제국주의는 이러한 시장 지배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추적한다. 전자는 주로 정치경제학적 설명이, 후자는 문화연구의 이론들이 동원된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및 배급 시스템을 어떤 거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떻게 문화의 다양성과 공정경쟁이 질식당하고 있는가, 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건전한 권선징악 교훈이 실은 어떻게 계급갈등, 제3세계, 인종 및 성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과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가 등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문화제국주의를 국민담론의 문제로 바라보는 방식이 있다. 선진국 특히 미국의 문화가 각국의 토착문화를 위협하여 질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턴스톨의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지적은 이러한 시각의 하나다. 맥도날드 햄버거가 우리의 전통적 식단을 위협하는 현상도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대규모 운동으로는 UNESCO의 “새로운 세계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질서(NWICO)” 요구 선언을 들 수 있다. 인류의 2/3를 차지하는 제3세계 국가들은 70년대 초에 비동맹 정상회의를 통해 국제적인 정보의 불평등과 왜곡된 흐름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1976년 튀니지 심포지엄에서 세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대다수를 선진국들이 독점함에 따라서 비동맹 국가들의 현실이 왜곡되어 유통된다고 비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계의 거대한 다국적 언론기구가 정보를 지배·조작함으로써 세계의 정보가 몇몇 국가들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반면에 다른 국가들은 무시하는 불균형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개혁하고 정보의 탈식민화를 성취하여 새로운 국제 정보 질서를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셋째, 문화제국주의를 세계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무기로 삼는 흐름이 있다. 이러한 입장은 미국과 같은 개별 국가의 횡포를 비판하기보다는 자본주의 구조 자체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주로 네오맑스주의자들이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자본주의의 확산이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 걸쳐서 균질적인 소비자 중심주의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다국적 기업의 부드러운 경제적 강제가 작동한다고 본다. 그와 같은 문화는 모든 경험의 상품화에 다름 아니기에 인간의 질적 가치를 훼손하며, 나아가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소수와 영원히 빈곤에 허덕이는 다수를 확대재생산한다고 공격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제국주의를 근대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서구 중심의 계몽 기획과 합리성에 대한 찬양이 가져올 파괴적 영향을 지적하는 탈근대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문화제국주의가 이른바 ‘문화적 상대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여러 문화제국주의 이론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국적 기업의 외피를 쓴 세계금융자본과 미디어복합기업들이 경제적·문화적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잘 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격차, 특정 국가 내에서 잘사는 계층과 못사는 계층 사이의 구별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언론학자 프레데릭에 따르면 제1세계의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단지 1/4를 구성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 총수입의 절반을 통제한다. 세계 인구 중에서 가장 가난한 1/5은 전 세계 GNP의 단지 2%만을 벌어들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격차는 30년 전보다 두 배나 커진 것이다.

by spiderlily | 2008/12/19 13:31 |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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